




갑갑한 마음에
무작정 새벽 기차를 타고 간 곳은 여수였다_
기차 안에서 잠을 청하려 할수록 정신은 또렷해지고,
수많은 생각들만 차창 넘어로 정신없이 내달릴 뿐이었다_
...
기차가 채 멈추기도 전에 사람들은 부지런을 떨었다.
플랫폼에 발을 내딪을 즈음엔
나는 이미 저들사이에 이방인이 되어버렸다_
새벽 4시 30분...
여수역 형광등 빛만이 유일한 광장에...
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
하룻밤 쾌락으로 유혹하는 여인숙 아주머니였다_
그녀에게 다가가
난 '향일암' 가는 길을 물었다.
잔혹한 코미디였다_
'저 사람들을 따라가!' 라는 칼같은 음성이
새벽 공기를 찢어냈다.
그녀의 작은 욕설이 내 뒷통수에 꽂힌다_
...
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는 버스안에서
난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다_
'휘둘리지않는다... 절대...'
미처 자세를 잡지못한채
내 체중을 견뎌내던 다리에 경련이 일었다.
얼굴에 실소(失笑)가 흘러내렸다.
쓸데없는 자존심이었다_
...
향일암을 오르기 위해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.
계단을 오르는 길과 마을을 돌아서 가는 길...
난 여기서도 자존심을 세웠다_
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계단을 택했다.
두려움과 용기가 뒤섞인다.
깜깜한 암흑을 청각 하나만을 의지해 오르고 걸었다.
길은 오르는 것만 있는게 아니었다.
갑자기 푹 꺼지는 계단에서 난 구르고 말았다_
입에서 욕이 나오려다 만다.
바보같은 꼴이다_
...
향일암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.
새벽 6시 가까이 된 시각이다.
어디선가 일출시간이 7시 15분이라는 소리가 들린다_
연인들.. 친구들.. 가족들이 추위를 피해 서로 엉켜있었다.
일출을 보는 가장 좋은 자리를 잡고선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.
자리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미련한 자존심이 솟는다.
손가락과 발가락에 감각이 사라진다_
...
해가 뜨기 시작한다.
어느새 난 뒤로 밀려나있었다.
내 앞에는
서로의 믿음을 확인하는 연인과
희망을 찾아나선 우정과
건강을 기원하는 가족이 있었다_
...
정작 나는 일출 앞에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.
무감각이었다.
'왜 이러고 있지?' 라는 질문만 머릿속을 헤집고 있을 뿐_
...
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자마자
난 향일암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다.
이번에는 내가 많은 사람들을 두고 내려왔건만...
결국 이방인이 되어버린건 '나' 였다_
아무것도 아닌...
텅빈 여행이 되어버렸다_
[ 캐논 익서스 칠오 / PhotoMerge by Photoshop CS2 ]
[ 캐논 익서스 칠오 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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